처음 MBA 를 준비하기로 마음 먹은 후 썼던 블로그 글이에요.
이미 햇수로 3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어제일처럼 생생하네요.
저는 이미 물을 건너 네덜란드로 와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지만,
어디서든 큰 결정을 마음에 품고 고민하는 분들이 계시겠지요.
모든 꿈과 결정의 순간들을 응원하며 글 공유해 보아요.
사실 오래 전부터 해외 대학원이나 MBA를 생각했었지만
GRE나 GMAT 을 공부할 생각하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늘 뒤로 물러나곤 했었다.
에세이를 쓰고, 영어시험을 쓰고, 추천서를 받으러 다니는 것도 이미 큰 하나의 산인데
그 전에 '좋은 점수'의 GMAT/GRE 를 따야한다는 것은 큰 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를 그만두고 또다시 취업준비를 할 때
해외대학원 준비를 같이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계속 되풀이되는 구직 생활에 심신이 지쳐
차라리 유학준비를 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 구직생활에 밸런스를 맞춰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영국정부 장학금을 준비하면서 대학원도 같이 준비했는데
에딘버러 대학원에서 합격 통보까지 받았던 것 보면
그래도 생각보다 하기힘든 과정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당시 GRE 를 1번 치긴 했지만 점수는 형편없었고, 에딘버러도 GRE점수를 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때는 쉽게 붙어버린 에딘버러에..에딘버러가 생각보다 좋은 학교가 아니구나 라고 생각할 정도로
좀 싱겁게 결과가 나왔었다.
그 때는 지원 자체가 내 스스로 정말 가고 싶어서가 아닌
준비과정 자체를 경험한다는 마음 반, 구직생활에 너무 정신이 올인되는 것이 싫어서 마음을 좀 딴데로 돌리기위한 마음 반이었으니
지금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긴 했다.
그 때는 Public Affairs를 전공으로 하는 대학원을 지원했었는데
사실 그게 뭐하는 건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냥 공부하다보면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 뿐이었다.
(그래도 에세이 쓰는 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나름 에세이 교정하고 시험 치르고 하면서 돈을 꽤 들였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그거 안하고 그 돈으로 지금 좀 더 준비과정에 돈을 쓰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쓸데 없는 후회!
이번에 MBA를 가기로 마음을 결정하게 된 것은 사실 굉장히 예상 외의 타이밍이었는데
올 초만해도 가끔 인터넷에서 해외 MBA 정보들이 있으면 열심히 깨작거리며 둘러보긴 했어도
막상 내가 실제로 그걸 준비할 마음의 상태는 0% 였다.
학비를 조달할 가능성은 0% - 100% 빚을 내서 가야하는 상황에서
그건 너무나 터무니없다고 생각했고
학비를 떠나서라도..수많은 입학절차를 준비할 마음이 1%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학교 브로셔들을 넘겨보며
대단하긴 하네.. 나 넣어주면 잘 다닐 자신은 있는데..라면 입맛만 다셨을 뿐이다.
그러나 MBA의 효용성은 이미 의심하던 바였고
왜 굳이 그리 쓸모없는 학위를 1억원이 넘는 돈을 주고 다녀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리고 커리어가 다시 1년이상 비는 건 더욱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MBA는 그냥 어릴적부터 동경하던 어떤 판타지-
그러나 현실적으로 더이상 가능하지 않은 지나간 목표와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가고싶던 학교의 브로셔를 프린트해 회사 책장에 끼워두었던 것을 보면
마음 한구석에 계속 미련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가기싫은 유럽여행을 어쩔 수 없는 일정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다녀온 후
갑자기 하나의 '계시'를 받고 돌아왔는데
이제 드디어 나갈 때라는 어떤 확고한 결심이었다.
4박 6일이라는 엄청나게 짧은 일정으로 다녀온 여행이었는데
갑자기 돌아와서 밟는 한국땅이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내 집이 여기가 아닌 것 같았다.
여기서 계속 사는 나의 미래가 그려지지도 않았다.
첫 주는 계속 답답한 마음으로 보냈던 것 같다.
5일 다녀와서 갑자기 이렇게나 한국이 낯설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고
(작년에 똑같은 곳을 더 긴 일정으로 다녀왔을 때도 이러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늘상 하던 일정을 소화하는데 갑자기 너무 큰 답답함이 느껴졌다.
퇴근하고 집 근처를 서성이던 어느날,
집 근처 사주집을 두 군데나 돌아보았고,
첫 사주집에서는 간보듯이
"일찍 해외 나가 살았더라면 훨씬 잘 풀렸을텐데. 나갈 기회가 없었나?"
(많았다..매번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발뺐다)
그리고 더 뒤숭숭한 마음으로 눈에 보이는 곳으로 대충 들어간 두번째 사주집에서는 첫 마디가
"갈까말까 할 땐 가세요" 라는 요지의 말을 다짜고짜 던지더라.
마치 내 마음을 정확하게 아는 듯한.. (맥주 마시다 만 벌건 얼굴로 사주를 봐주길래 첫 인상은 0%의 호감도였지만)
이 사주집에서 나에게 해준말은
할까말까 할 때 지르는 것만이 내 인생을 더 잘 풀어나가는 것이며,
그래도 안정적인 것을 최우선시하려는 나의 또다른 성향이 계속 지르려는 나의 발목을 붙잡을 것인데,
그러면 안정 속에서도 번잡한 마음을 벗을 길 없다는 것이었다.
이직운이 어떻고 결혼운이 어떻고..이런 건 전혀 말 안해주더라.
내 안에 항상 지르려는 마음, 안정을 찾으려는 마음이 싸우니 항상 마음이 번잡할텐데
지금까지 안정을 찾으려 했지만 안정적이지 않지 않았냐며,
결국엔 모험도 더 큰 안정을 위한 것이니 자신을 믿고 질러보라는 말을 해주었는데
참,
내가 듣고 싶던 천상의 메세지를 듣는 것 같은 마음이었다.
원래 사주 가끔 재미로 보기는 해도, 뒤돌아서면 까먹는 스타일인데
아무래도 내가 원하던 바를 말해주니 그냥 믿고 싶었나 보다.
만일 사주에서 내가 해외나갈 운이 별로 없다고 하면
또 별로 안 믿었을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사주를 보고와서
내 결정에 순풍단 듯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처음에는 이런 마음과 결심이
여행을 다녀온 직후,
일상에 지친 마음에,
더군다나 친한 친구들이 다 유럽에 있던 터라
그냥 잠깐 솔깃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준비할 수록 마음이 단단해 지는 것을 느꼈다.
누가 보면 내가 갑자기 여행다녀와서
나도 유럽가서 살겠다고 소리치는 철없는 여자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사실 내 안에서 십수년간 쌓아온 열망이었다.
의외에 타이밍에서 드디어 결심을 내린 것이다.
원래 나는 내 계획을 미리 떠벌리는 스타일이 아닌데
이번엔 만나는 사람마다 내 계획을 얘기하고 다녔다.
그럴 줄 알았다는 친구들부터, (주로 날 잘 알던 친구들)
너무 급작스럽지 않냐는 사람들까지
반응은 다양했지만
말할 수록 점점 내 결심이 뿌리내려감을 느꼈다.
처음에는 말하면서도
아 이렇게 말하고 다니다가 안가기로 했다고 하면 참 우습겠다 하는 걱정을 함께 했었는데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들뜸을 가라앉고
내가 드디어 나와 맞는 길을 택할 용기가 섰구나 라는 생각에
준비 과정에서 묘한 행복감을 느꼈다.
여기까지는 MBA를 준비하게 된 간략한 동기.
여기에 십수년간의 나의 열망과 생각들을 담을 순 없지만,
한국 나이 32살.
여름을 맞이하는 늦은 봄에
갑자기 그렇게 나는 뜬금없이
MBA를 준비하게 된 것이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GMAT 준비를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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