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와서 제일 놀랐던 순간 중 하나가 바로 회사 점심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나 저처럼 삼시세끼 밥심으로 살던 저에게
네덜란드 첫 구내식당의 풍경은 얼마나 소스라치게 만들던지요.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해진 식단이지만요.
한국에서 저는…
아침은 출근하는 길에 있던 동네분식점에서 김밥 한 줄 사서 먹고
점심은 회사 근처 백반집이나 갈비탕집에서 먹고
저녁은 또 회사 근처 분식집이나 기타 음식점에서 밥을 먹는
정말 야무지게 삼시세끼 먹는 사람이었지요.
누군들 안그러겠어요?
한국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아침은 좀 다르다 쳐도...점심에 얼큰한 탕이나 백반 먹는 게 너무나 익숙하지 않겠나요?
그러다 네덜란드에서 처음 점심을 먹으러 구내식당에 갔던 그 날,
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참으로도 놀라웠더랬지요.
나름 매우 큰 회사의 글로벌 본사인 곳이었기에
구내식당의 메뉴가 이것저거 갖춰져 있긴 했지만요
(그래봤자 한국인 수준에는...크게 씅(?)에 차는 건 없긴해요)
키가 190이 넘는 백금발 장정들이
하나같이 식판에 식빵쪼가리만 가득 담아 점심을 먹고 있는 거에요.
식빵 한 봉다리를 덜렁덜렁 들고와서
치즈나 스프레드만 사서 끼워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참 그 이질적인 풍경이라니..
남자나 여자나 다들 한덩치 한 키 하시는 분들이
식빵쪼가리(?)에 치즈만 끼워 먹으면서
점심이라고 하는게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니까요.
저렇게 먹고 어떻게 저 등치(?)를 유지하지?
정말 궁금한 마음이 들 정도였어요.
같은 유럽사람끼리도 비웃는게 네덜란드 사람들의 이 식습관인 것 같은데,
바로 네덜란드 사람들은 점심에 Warm meal을 먹는 게 익숙하지 않다는 거에요.
그들에겐 점심에 따뜻한 파스타나 고기를 먹는 게 매우 특이한 거죠.
네덜란드에서 점심은 식사라기보다 허기를 채우는 간식의 개념에 가깝다고 할까요.
그들에게 '식사'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먹는 저녁 딱 한 끼인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유럽(특히 미식으로 유명한 이태리나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 온 경우) 사람들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하루에 Warm meal을 두 번 먹으면 안된다는 불문율이 있다'라고 비웃기도 하지요.
저도 이제 이런 네덜란드의 식사가 매우 익숙해져서
아침에도 간단히 샌드위치,
점심에도 간단히 샌드위치 또는 샐러드를 먹는 게
자연스러워졌답니다.
(참고로 저희 회사의 점심시간은 30분이에요)
하루 중 제대로 된 끼니는 저녁 한 끼 인 것이지요.
부모님이 보시면
밥도 못 먹고 다닌다고 속상해 하실 풍경이지만,
여기 사람들 그렇게 먹고도
덩치들이 대단한 것 보면
영양학적으로 뭐 크게 꿀릴 일도 아닌가봐요.
저는 다행히 유제품 빅팬이라
치즈를 끼워먹는 샌드위치가 3끼 중 2끼를 차지하는 이런 식단이 매우 즐겁지만
(네덜란드에서 치즈는 한국의 김치)
정말 토속한국식단이 아니면
먹은 것 같지도 않고 속이 부대끼는 분들이라면
적응하기 어렵겠다 싶기는 해요.
저도 초반에는
샐러드며 샌드위치며 각종 메뉴를 접시에 산 같이 쌓아 먹었었거든요.
(한국서 점심을 갈비탕 한그릇 뚝딱하던 가락;)
조금씩 조금씩 식단에 익숙해지고
'빵쪼가리'먹어도 오후에 굶어죽지 않는다 영양실조 걸리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조금씩 체감해가면서
저의 점심식단이
점점 더 더치화되어가고 있어요.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렇게 식사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것이
청교도 문화 때문에 식사를 즐거움이 아닌 허기를 채우는 수단으로만 인식하고
식도락의 즐거움을 엄격히 배제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영국도 비슷)
정말
네덜란드에 있다보면
그냥 느껴진달까요
이 사람들은….
유전자에 미식 탐식...이라는 게 없던 사람들이구나…..
그래서인지 하루가 다르게 음식솜씨가 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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