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네덜란드의 디벤터(Deventer)라는 작은 도시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저는 테라스가 있는 유럽식 아파트에서 살고 있고,
현재 다니는 현지 회사에서는 Business Development 관련 일을 하고 있어요.
한국인은 당연하게도 저 하나 뿐이고, 동북아시아에서 온 사람도 저 하나 뿐이지만
각종 대륙과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과 더치인들이
한 마음으로 잘 어우러져 근무하고 있답니다.
제가 한국에서 늘 바라던 대로 여기서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
함께 알콩달콩 행복하게 지내고 있고,
아직 학비대출을 열심히 갚는 중이라서 크게 여유는 없지만
그래도 매달 월급 받으면
대출 갚고, 방세 내고, 장 봐서 맛있는 요리 매번 해먹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는 돼요.
지난 2년간 여행다닌 곳만 해도 프랑스,벨기에,포르투갈,독일 등등이 있구요
올해 상반기만 해도 도미니카공화국과 스페인 여행이 잡혀 있어요. 출장을 포함하면 독일도 포함되구요.
이렇게 써놓으니 평범한 제 일상도
뭔가 되게 행복하고 많이 이룬 것처럼 들리네요.
아니면 집에 돈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외국에 나와 자리잡게 된 사람처럼 보이거나요.
그런데 약 2.5년 전만해도
저는 유럽생활을 꿈꾸기만 하는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 회사원이었답니다.
어릴 때부터 이유없이 인생의 큰 로망이었던 유럽생활을 이래저래 꿈꿔보다가도
각종 대안을 찾아보다보면 엄두도 나지 않아 마음 접기만을 몇 년을 했더랬지요.
그래서 2017년의 저는
월급도 200만원이 겨우 넘는 소기업 회사원에
남들보다 취업이 많이 늦어 경력도 마땅찮고
솔로로 산지는 몇 년이 훌쩍 넘어
매일 퇴근길이 마음이 허하고 외로우면서도
딱히 다른 일상의 대안이 없는 그런 나날을 지내고 있었어요.
그 넓디 넓은 서울이
마음 속에서는 항상 어찌나 부대끼던지...
그 마음을 달래느라
책도 정말 많이 읽고 (온라인 서점 상위 1% 구매자였답니다)
부업도 많이 하고 (번역에 과외에...투잡 쓰리잡을 뛰었어요 평일주말 가리지않고)
쇼핑도 많이 하고 (허한만큼 돈이 나가더라구요. 지나가다 지른 옷과 화장품들이 얼마였는지)
술도 많이 마시고 (제 인생 흑역사는 이 시기에 다 생성..)
그 당시에는 자취방에서 잠들기 전
항상 시크릿 까페의 경험담들을 보며 잠드는게 낙이었던 것 같아요.
말도 안되는 다양한 서프라이즈들을
시크릿으로 이루었다는 경험담을 읽다보면
저도 모르게 제 현실의 갑갑함이 사라지고
저에게도 희망이 생길 것만 같았거든요.
그럴 때면 항상 유럽에서 일하면서 살고 있는
제 자신을 그리곤 했었지요.
막상 그 서울에서 해외취업까지의 길이 전혀 답이 안 보이는 아득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그러다 17년 여름,
1년 MBA 과정 후 해외취업의 길을 알게 되면서
구체적으로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죠.
그러나 MBA라는 게...일단 어마어마한 학비로 원체 악명이 높잖아요.
그런데 저의 그 당시 상황이라하면
거의 한달 벌어 한달 쓰고 먹던 터라 제대로 된 저축도 거의 없던 상황,
부모님은 퇴직하신 후라 저에게 딱히 자금적으로 도와주실 형편이 안되고
이미 제 나이 서른이 넘어 부모님들은 어련히 제가 좀 더 안정적으로 정착하길 바라시는 상태에서
감히 가벼운 농담으로라도 해외유학, 그것도 제일 비싸다는 MBA 유학을 입에 올릴 엄두조차 안나는 그런 상황이었이죠.
제가 MBA준비한다는 말도 하기 부끄러운 상황이었어요.
MBA라고 하면 보통 경력 좋고 모아둔 돈도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커리어 점프를 위해 투자 겸 진행하는 엄청 포부높은 꿈인데
저는 포부야 크긴 했지만, 경력도 별로에 모아둔 돈도 없는 상태에서
거의 도피성 유학을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오롯이 해외취업을 위해 진행하는 도피유학 말이죠.
아무튼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저는 인생 마지막 기회다 라는 마음으로 무조건 밀어붙였고...
어렴풋한 소망을 확고한 결심으로 바꾼지 6개월만에 전 출국을 했어요.
그리고 이제 네덜란드에 온지 3년차에 접어 들었네요.
준비 과정 속에서 중간에 포기할 기회야 너무나도 많았죠.
갑자기 몸도 많이 아파서 회사를 자주 결근해야 하는 상황까지 와서 GMAT 등 MBA 준비가 어려워지기도 했고,
은행에서 대출 승인이 안나기도 하고,
고이율인 대신 대출 승인이 웬만하면 난다는 해외 학비대출도 거절당하고,
뭐 그냥 하늘에서 저 외국 나가지 말라고 발목잡는 느낌이었어요.
사주를 봐도 이미 외국나가긴 늦은 타이밍이다, 더 일찍 나갔다면 참 잘풀렸을거다...이런 말만 듣고요.
그래서 중간중간 포기할 타이밍이 정말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인지
제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또 의외의 도움과 응원들을 받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무사히 출국(!)할 수 있었답니다.
요즘도 하루하루, 이미 제 일상이 된 작은 네덜란드 마을을 걷다보면
그 아름다운 풍경과 제 심적인 안정감에
'아 내가 그리도 바라던 나의 꿈 안에서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해요.
이런 평화롭고 안정된 유럽에서 여유롭게 커피한잔하는 저의 모습이
제가 늘 바라던 저의 '시크릿'이었거든요.
그렇지만 사실 아직
시크릿을 믿는다는 말만 해도
마치 동화 속 세상에 사는 사람마냥 현실감 떨어지는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쉬운 것 같아요.
저도 사실 그래서 오프라인에서 시크릿 얘기는 안해요.
그리고 이게 평가의 관점에 달린 거긴 한데
사실 '시크릿이 안 이뤄졌다' 라고 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많긴 하거든요.
예를 들어,
저는 MBA 졸업 후 제 연봉을 6만 유로 이상 받겠다고 시크릿했었고
회사도 제가 정말 가고싶던 대기업을 들어가는 걸로 시크릿 했었는데
그건 안 이루어졌거든요.
그러면 사실 전 시크릿 욕할 수 있잖아요.
제가 바라던 특정 조건과 항목이 성취된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시크릿은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닌 것 같더라구요.
그렇지만 큰 그림으로 봤을 때
내가 머릿속에서 그리는 모습에 가까워진다는 게
제일 비슷한 요지인 것 같아요.
전 제가 바라던 회사나 연봉은 아직 이루질 못했지만
그 외에 제가 바라던 부분들
-나이스한 직장동료들
-날 신뢰하고 믿어주는 상사
-엄청 인터내셔널한 근무환경
-내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일할 수 있는 업무
-성장 가능성이 큰 업무와 포지션
-출장을 많이 다닐 수 있는 업무
등등에 있어서는 다 이루었거든요.
무엇보다 회사 외적인 부분에서
위에 기술한 저의 생활터전 (유럽, 마음이 잘맞는 동반자, 창이 큰 아파트 등등)이 제가 어렴풋이 그리던 모습대로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계속 제 꿈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니
지금 이 장면을 '결과물'로 단순하게 말하기도 어렵구요.
그러나 약 3년 전의 제 모습과 지금 제 모습을 보면
저는 자신있게 제가 제 꿈에 많이 가까워져 있고 제가 더 안정적으로 변했다고 말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그러기까지의 과정들은 단순히 자기 전 상상만으로는 당연히 안되는 것 같구요,
그러한 상상이 모이고 모여, 어느 순간 엄청난 추진력과 실행력으로 바뀌게 됐을 때
결과물을 가져오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제 여정에 대해 글을 쓰는 것도 제가 좀 더 많이 이루고 나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쓰고 싶었는데요
예를 들어 제가 유럽에서 정말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커리어적으로 인정받았을 때 말이에요.
그래야 저의 이야기도 더 설득력이 있고 울림이 있을 테니까요.
그냥 지금부터 제 거취와 여정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공유하기로 했어요.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 다시 제 글을 보았을 때
좀 더 생생하고 힘이 되는 글이 될 것 같아서요.
모두들 각자 자기 나름의 꿈과 소망을 마음 속에 품고 살고 있잖아요.
그게 한국이 되었든 외국이 되었든.
인터넷을 하다보면, 주변과 이야기 하다보면,
그 꿈과 소망을 지키기가 훨씬 어렵고 세상에 회의적이기가 쉬워지는 것 같지만
저도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쓴 희망적인 글 하나로 또 힘을 내고 달려나갔듯이
저의 경험과 기록,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저의 좌충우돌 정착기가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따듯한 응원과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지금 서른 중반,
그런데 지금 이십대 초반과 같은 처지에서
유럽에서 다시 시작하고 일구어 나가야 하거든요.
그 일련의 과정들을 여기에 다 세세히 기록해 놓을게요.
같이 화이팅해요.
'네덜란드 생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야만 한다는 강박 (0) | 2020.01.15 |
---|---|
더치 남자와 연애하기? (관찰후기) (0) | 2020.01.14 |
네덜란드 누드스파 이용기_자연으로 돌아가는 극강의 프리덤 (0) | 2020.01.03 |
유럽에서 세탁기 첫 구매 (0) | 2020.01.02 |
디킨스 페스티벌 - 온 마을 전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드는 사랑스러운 축제 (1) | 2020.01.02 |